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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b.k. jeon
Subject   My stories in America: (12) 흑인의 설음
  흑인의 설음

   미국인구 2억 8천만의 12%가 흑인이다. 약 3천 5백만 명의 노예 후손들이 살고 있는 셈이다. 흑인들을 흔히 니그로(Negro: 스페인어로 검은색이란 뜻), 블랙(Black), 또는 칼러드(colored) 라 불러왔는데 지금은 점잔은 표현으로 아프리칸 아메리칸(African-American) 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미국의 흑인 역사는  한마디로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것이었다. 인간을 노예로 사고 팔고, 짐승처럼 혹사한 이 역사는 아마 영원히 인간의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부끄러움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알다시피 미국의 흑인노예들은 모두 아프리카로부터 온 사람들이었다. 아프리카인들이 잦은 부족간 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적을 노예로 팔아먹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옛날부터의 일이었지만, 본격적인 노예무역이 시작된 것은 남북 아메리카에 백인들이 이주하기 시작한 1500년대 이후의 일이다.
   먼저 스페인, 폴튜갈인들이 웨스트 인디(West Indies)의 설탕농장에 필요한 노동력을 얻기 위해 흑인노예를 끌어오기 시작했고, 나중에 남북 아메리카에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화란, 영국, 프랑스인들도 노예무역에 뛰어들게 된다. 이 노예무역은 삼각무역(Triangular Trade)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유럽인들이 총과 술(특히 럼주), 옷 종류를 가지고 서부 아프리카의 가나, 말리, 송하이 지역에 가서, 흑인노예를 물물교환 형식으로 사들인 다음,  대서양을 건너 웨스트 인디(West Indies)까지 가서, 이들은 노예상인들에게 노예를 팔고 대신 럼주를 만들 설탕과 당밀을 가득 싣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런 삼각형 모양의 교역을 통해, 아프리카에서 끌려간 흑인들은 몇 명이나 될까? 정확한 숫자를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350년 동안에 약 천만 명 정도가 남북 아메리카로 끌려갔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고 있는데, 미국으로는 이 숫자의 약 5%,  약 50만 명이 노예로 팔려 왔다한다.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되었던 흑인작가 Alex Haley의 소설 "Roots"를 보면, 흑인들이 어떻게 잡혀 어떤 취급을 받으며 대서양을 건넜고, 미국에서 어떻게 혹사를 당하며 살았는가를 잘 묘사하고 있다. 실제 작가의 증조부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이 작품은 미국 흑인들을 일깨워주는 기념비적인 대작이었다. 이 책을 보면, 아프리카에서 잡힌 흑인들은 배에 짐짝처럼 실린다. 모두 도망을 갈 수 없도록,  발에 족쇄가 채워진 채로 선반식 마루에 누워 있어야만 했던 이들은 용변도 누운 채로 해결해야 했고, 식사도 누운 채로 해야 했다. 범선으로 대서양을 건너는 몇 달 동안의 긴 항해에서 많은 흑인이 병들고 죽어 갔다. 죽은 시체는 바로 바닷물에 내다버리고. ....인간으로서 이런 일을 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이들은 모두 돈을 벌려고 혈안이 된 백인들이었다. 사람의 모습에 짐승 같은 마음을 가진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사람들! 이들에게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천만명중, 중간에 몇백만이 죽었는지는 아예 기록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말없이 출렁이는 대서양만이 그 숫자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들 노예상인 중에서도 후세에 기억되는 사람이 하나 있다. 노예선의 선장이었던 잔 뉴톤(John Newton)이란 사람인데, 그는 어느 날 노예를 가득 싣고 대서양을 건너는 중에 풍랑을 만난다. 사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거센 풍랑 속에서, 그의 배는 침몰 직전 위기에 처한다. 그때 그는 오랫동안 생각하지도 않던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하나님! 이 불쌍한 인간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이렇게 그는 외치고 또 외쳤다고 한다. 어느 순간 그는 선실 안에 가득한 빛을 보게되며, 놀라운 신앙적 체험을 하게 된다. 배는 무사히 웨스트 인디에 도착을 하고, 바로 뉴톤은  배를 떠나, 후에 미국에서 목사가 되어 섬기는 생활을 하게 된다. 훗날 그는 당시의 체험을 바탕으로 많은 찬송가를 작곡하게 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오늘날까지 애창되고 있는, 한국에서는"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라고 번역된, "Amazing Grace!" 이다. 1절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I once was lost, but now a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미국에 팔려온 노예들은 대부분 미국 남부의 농장에서 농노의 신분으로 일을 했다.  쌀, 담배, 설탕수수, 목화 등을 생산하는 농장이나 소규모 가족 농장에서 이들은 보수도 없이 일을 했다. 노예의 일부는 북부 미국으로 팔려가 공장이나, 건설현장, 조선소에서 일을 하거나, 어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이들 노예들은 Slave Codes(노예수칙)라는 법에 따라 자유가 전혀 없는 생활을 해야했다. 이 수칙은 노예들에게 무기의 소지를 금하고, 교육을 금하며, 주인의 허락 없이 다른 노예를 만나는 것을 금한다는 것, 법정에서 백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수 없다는 것, 도망을 해선 안 된다는 것 등을 골자로 하고있다. 도망을 하다 잡히면 그 벌은 가혹했다. 다리를 잘려버리거나 죽임을 당해야 했다. 이런 살벌한 상황에서도 가끔 조직적인 노예폭동이 일어나고, 자유를 찾으려는 노력이 끝이지를 않았다. 미국북부에서는 점차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려는 노력이 일어나고, 주로 농업에 농노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남부에서는 노예제도를 유지하기를 원해 미국은 차츰 노예제도의 존폐를 놓고 국론이 양분화 되기 시작한다.
  1860년 마침내 노예제도의 유지를 주장하는 남부 7개 주가, 나중에 4개 주가 더 참여하지만, 연방정부에서 탈퇴하여 남부동맹(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을 결성하여, 북부동맹과 대립하다가 다음 해에 결국 남북전쟁이 터진다. 인구 2200백만의 북부와, 350만의 노예까지 포함해서 900만 인구밖에 되지 않는 남부동맹이 4년여에 걸친 전쟁을 하게 되는데 62만 명의 희생자를 내고서야  끝이 난다. 이 전쟁은 노예제도의 존폐를 놓고 일어났지만, 그 이면에는 산업화 쪽으로 치닫던 북부와, 농업위주의 경제제도를 선호하던 남북의 대립이라 할 수 있었다. 전쟁이 계속되고 있던 1863년 1월 1 일, 링컨 대통령은  전면적인 노예해방을 선언하지만, 이 전쟁이 끝난 5일 후 그는 암살범의 총탄에 희생되고 만다.
  흑인들은 이제 모두 자유인이 되었다. 모두 백인들과 똑 같은 자유를 누리고 경제적인  평등을 누리며 살 줄 알았지만, 노예의 신분을 벗어 났다해서 차별조차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잠시 참정권과 투표권이 주어지기도 했지만, 곧 폐지되고 심한 경제적 사회적 차별이 시작되었다.
1907년부터 모든 남부 주들이 흑인들을 분리차별(Segregation)하기 시작하여 흑인들은 모든 학교, 호텔, 식당, 극장, 공공장소를  백인들과 함께 이용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1910년에는 모든 남부 주들이 흑인의 투표권을 몰수하여, 흑인들의 정치참여를 차단하여 선거권, 피선거권을 빼앗아 버렸고, 남북전쟁 직후 등장한 극우 인종차별단체인 Ku Klax Klan( 일명 KKK) 은 흑인들을 납치하여 린치를 하거나, 살해하였다. 이런 살벌한 상황에서 살기가 어려웠던 흑인들은 100만 명 이상이 일과 자유를 찾아 북부의 산업도시로 이주하여 각 도시마다 흑인빈민가 게토(Ghetto)가 새롭게 생겨나기 시작했다. 공장의 생산직이나, 서비스업의 일손밖에  할 일이 없었던 흑인들의 빈곤은 만성적인 것이 되어 버리고, 북부에서도 차별은 여전했다. 여기에다, 1929년 불어닥친 경제대공황은 흑인들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고, 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의 New Deal 정책으로 다소 어려움이 풀리다가, 2차대전이 터지면서 일어난 전쟁특수로 흑인들은 군수공장에서 많은 일터를 얻게 되어 생활을 해 나간다.
  그러나 이것은 전면전이라는 특수상황에서 호황의 덕을 본 것일 뿐, 지속적인 흑인생활의 향상을 가져오지는 못하였다. 여전 심한 인종차별과 분리정책에 시달려온 흑인들의 불평불만은 항상 비등점 근처에서 끓어오르기 직전의 상태에 있었다. 마침내 흑인 감정폭발의 기폭제가 1955년, 몽고메리 앨라배마 주에서 터지고 말았다. 로사 팍(Rosa Park) 이라는 흑인 여자가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백인남자 승객에게 앉은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경찰에 넘겨 진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앨라배마 주법은 모든 흑인은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로사 팍은 운전기사가 몇 번 자리 양보를 재촉했어도 끝내 자리를 백인에게 양보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사건은 흑인사회의 감정과 자존심을 폭발하게 하여, 마틴 루터 킹 목사(1929-1968)의 주도아래 382일 간의 흑인버스보이콧운동으로 발전하고, 1950년대 60년대의 불같이 일어났던 흑인인권운동(Civil right movement)의 시발점이 되어 버린다. 비폭력 비저항을 원칙으로 삼았던 이 민권운동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가서 미국 전역을 뒤흔들었다. 킹 목사는 그의 흑인인권운동, 빈곤퇴치운동의 결과로, 1964년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을 하게 되지만, 자연히 백인 극우분자들의 미움을 받게되어 결국 암살을 당하고 만다. 킹 목사 암살사건이 터지자, 흑인들의 폭동이 일어나고야 만다. 미국의 100개 이상의 도시에서 흑인들의 방화와 약탈로 엄청난 재산상의 손실을 입게된다.
   미국의 정치지도자들도 결국은 흑인인권문제에 눈을 뜨게 되어, 1961년 케네디 대통령 당시 유색인종의 고용증대를 위해 Affirmative action이 채택되며, 1964년엔 피부색, 인종, 출신국가, 종교, 성별에 따른 일체의 차별을 금하는 Civil Right Act가 의회에서 통과되고 , 1965년 존슨 대통령 당시 흑인의 전면적인 투표권을 인정하게 된다. 이런 일련의 유색인종을 위한 인권입법은 사람대우를 받기 원해 투쟁해왔던 흑인인권운동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를 갈망하던 흑인노예와 그들의 후예들은 이젠 법적으로는 백인들과 동등한 자유와 권리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아직도 심하다. 미국의 대도시 어디에나 있는 흑인 빈민가 게토에 가보면 이런 차별을 피부로 느낄 수가 있다. 범죄가 성행하고 마약복용 문제가 심각한 이 빈민가의 흑인들을 보고, 무조건 게으르고 교육을 받지 않고 일을 하기 싫어해서 못 산다고 매도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흑인들의 범죄. 마약, 빈곤문제는 이 사회의 역기능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흑인사회문제는 미국의 대 흑인정책의 산물이고, 오랜 차별의 결과이다.
  1960년, 몽고메리 앨라배마에서 백인 우월주의자  James E. Ray에게 암살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묘비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Free at last, Free at last. Thank God Almighty, Free at last!"
  "마침내 자유이네, 자유이네.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마침내 자유이네"
아직도 진정한 흑인의 완전한 자유와 평등은 멀기만 하다. 킹 목사처럼 죽어서야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이 흑인들의 운명이라면 너무 슬픈 일이라 생각이 된다.

   21세기 현재에도 노예가 있다고 하면, 그것도 2천 700백만 명의 노예가 지금도 있다고 하면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임을 어쩌랴! 미국의 사회학자 케빈 베일스는 그의 저서 "현대판 노예"에서 전 세계의 노예실태를 고발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에는 아직도 노예제도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 노예의 숫자가 과거 400년간 아프리카에서 잡혀간 노예의 두 배가 넘는 27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영국에 본부를 둔 국제노예거래반대운동(ASI)과, 유엔 아동기금(UNICEF)의 보고도 베일스의 고발과 일치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것은 사실이다.
  이들 현대의 노예들은 가족의 빗을 갚기 위해 어린 나이에 농장에서 무보수로 일을 하거나, 전쟁 중에 잡혀서 노예로 팔려 혹사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 전문적인 노예상인들에게 속아, 높은 보수와 교육, 기술습득의 기회를 기대하고 따라 나섰다가 노예로 팔려간다고도  한다. 많은 노예들이 현재 수단, 파키스탄, 인도, 브라질 등에 흩어져 있으며, 아프리카에서는 가사노동에 종노릇을 하며 살아가는 어린 소년소녀가 수십만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노예매매조직은 점점 커가고, 국제인신매매의 숫자는 증가 일로에 있다고 하는데, 노예의 수요보다 공급이 더 많아 노예 값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린 노예  한 명  값이 고작 한화  1만 9천원 정도, 미화로 20불도 안 되는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고 하니 사람이 사람이랄 수가 없는 실정이다. 국제적십자사 같은 기구들이 노예거래의 근절방안을 연구하고 있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묘책이 없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빈곤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아프리카 곳곳에 내전이 끝이지 않는 한, 카카오, 커피, 바나나, 코코아 농장의 일손부족현상이 해소되지 않는 한 노예무역은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는 슬픈 전망이다.
  
  하나님!
  하나님!


JimmiXS :: eQhLTtSeh  [2016/08/13]
Barnypok :: avhGYfdfj  [2017/01/02]
Barnypok :: SiwXErSAMiuwQOcIT  [2017/01/04]
Barnypok :: UFlKDHbxTohOPW  [2017/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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