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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b.k. jeon
Subject   My stories in America: (13) 동양인의 애환

  동양인의 애환

   미국 사람들은 동양인을 부를 때, 점잔은 자리에서는 오리엔탈(Oriental)이란 말을 사용하고, 욕을 할 때는 Yellow, Chink, Jap, Gook 등의 상스런 말을 사용한다. 본래 Oriental 이라는 말은 영국에서 나온 말로 영국 동쪽에 사는 동양인을 칭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나, 의미상으로는 동양인을 비하하는 뜻도 있다고 한다. 욕으로 쓰는, Yellow 라는 말은 노란둥이 겁쟁이라는 뜻이고, Chink 라는 말은 중국인을 되놈이라 부르는 식의 욕이다. 또 Jap 은 일본인을 왜놈이라 부르는 욕이며, Gooks 란 말은 동양인 전체를 싸잡아 동양놈이란 욕을 할 때 사용된다. 몇 일 전 신문을 보니, 워싱톤 주의 주 의회에서 동양계 의원들이 Oriental 이라는 말의 사용을 금지하고, 대신 Asian 이란 말을 사용하자는 발의를 하여 입법화되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숨겨진 뜻이 좋지 않으니, 아시아인이라고 부르자는 입법목적을 가지고 있는 듯 하여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이런 욕된 말의 문서상의 사용은 금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상 생활에서 입으로 나오는 욕설이야 어떻게 금할 수 있겠는가!

    미국에 오래 살다보면 느끼게 되는 것이지만, 미국인들의 동양인관은 그렇게 호의적인 것이 아니다. 대개 동양인에 대해서 나쁜 선입관을 가지고 있거나, 철저히 무관심하거나, 속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더러 동양인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도 있지만, 이런 사람은 좋은 동양인 친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거나, 동양 역사와 전통을 이해하는 사람이거나, 동양을 방문하여 좋은 체험을 한 사람들이다. 어떤 형태로든 동양과 연관을 맺은 일이 없고,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대개 막연한 거부반응을 가지고 동양인을 대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처음 동양인을 만났을 때, 마음 문을 여는 미국인은 많지가 않다. 사귀면서 믿을만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판단이 서기까지는, 미국인은 상당히 의심스런 눈빛으로 동양인을 대하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인의 이런 편견과 선입관은 역사적인 사실과 백인들의 근거 없는 우월주의적인 태도에 기인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미국인들이 동양인을 접촉하기 시작한 것은 1849년부터 시작된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Gold Rush) 이후의 일이다. 금광소동으로 일손이 부족했던 미국은 1860년, 3만 5천명의 중국노동자들을 첫 이민으로 받아들인다. 이 중국노동자들은 먼저 모두 광산에 투입되고 나중에는 철도건설현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자연히 일거리를 찾는 미국인들은 중국인들 때문에 광산이나 철도건설현장에서 일거리를 찾을 수 없다는 불평불만을 하기 시작했고, 낯선 중국문화에 대한 이질감이 높아져 마침내는 백인폭도들이 중국인 합숙소를 습격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중국노동자들에 대한 미국여론이 나빠져 버리고 말았다. 이 결과, 1882년 미국은 중국인의 미국이민을 금하는 "중국인제외법안(Chinese exclusion acts)"을 제정하여 버린다. 이것이 최초의 동양인에 대한 차별입법이었다.
  그 다음 미국에 들어오게 된 것은 일본노동자들이었다. 하와이의 사탕수수농장에 일손이 부족하게 되자 미국은 일본에 눈을 돌려 1만 9천명의 일본노동자들을 계약노동 형식으로 받아들인다. 일본인들은 열심히 일하고 근면하여 어느 정도 인정을 받지만 세월이 지나며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자주 파업을 하여 말썽이 일었다. 지금도 하와이에는 일본인들이 많이 살고, 일본인 후예들이 정치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것은 이때부터 힘을 발휘한 일본인들의 단결력 덕분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일본인들이 노동계약 만료 후 하와이와 캘리포니아에 정착하여, 일본으로부터 친인척을 초청하기 시작하자, 미국은 재빨리 일본에 압력을 가하여, 일본인의 초청이민을 금하는 협정을 맺어버리고 일본인의 증가추세를 막아 버린다.
   이제 미국은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에 부족한 노동력을 다른 곳에서 구해 올 수밖에 없었다. 한국이 그 물망에 올라 1900년대 초반 약 7천명의 한국노동자들이 하와이로 오게 된다. 한국노동자들이 와서 농장에서 싼 임금을 받으며 일을 하자, 이번에는 일본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나, 자기들의 파업을 방해하고 일터를 잠식한다고 일본정부에 조처를 건의하고, 일본정부는 한일합방직전에 유약한 조선왕조에 압력을 넣어 한국노동자의 하와이 이민 길을 막아버리고 만다. 한국노동자도 못 들어오게 되자, 몇 년 후부터 미국은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얻은 필리핀에서 무려 11만 여 명의 노동자를 들여오고, 인도 노동자들도 들여오기 시작한다.
  
    이렇게 미국인들은 동양의 노동자들과 접촉을 시작하여 이때부터 그릇된 동양인관을 가지기 시작했다. 당시의 동양 노동자들은 거의 빈민층 출신에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사람들이어서, 위생적일 리도 없었고 영어를 할 리도 없었다. 자연히 낯선 나라에서 언어도 통하지 않았으니 어리석고 둔하게 보였을 터이고, 노동자신분이니 굴종적인 면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점들에서 미국인들은 동양인은 모두 이렇다는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런 나쁜 인상에 결정적으로 악재로 작용한 것이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었고 태평양전쟁이었다.
   1941년 12월 7일, 군국주의 일본은 진주만을 공격함으로서 미국과 5년에 걸친 태평양전쟁을 하게 된다. 전시의 민심이 좋을 리가 없다. 더욱이 일본의 기습공격으로 태평양함대를 거의 잃고,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미국의 대일 감정은 극이 다다르고 있었다. 서슴없이 일본인을 경멸하는 Jap 이란 말이 일상용어가 되어버리고, 동양인 전체를 같은 부류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마침내 미국에 있는 전 일본인 11만 명을  10여 개 주에 급조된 집단수용소에 분산 수용하여 버리며, 인권이고 자유이고를 찾을 겨를도 없이 수용소에 갇힌 일본인들은 모든 사유재산을 잃어버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치독일의 유태인박해 같은 박해는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후에 미국은 이 일본계수용인들에게 사과도 하고 형식적인 보상도 해주었지만, 이것은 하나의 정치적인 제스처일 뿐 미 국민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사과와 보상은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이 다시 동양계의 이민을 다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1965년이었다. 모든 제한이 철폐되고 아시안에게 이민문호가 개방되자, 중국, 필리핀, 한국, 인도 등에서 이민의 물결이 다시 일기 시작하였다. 거기에다  1975년 4월 30일, 월남이 공산화되면서 월남 피난민이 수십만 명 미국으로 밀려 와서 , 현재 미국의 동양인은 약 1천만 명에 이른다. 이는 미국 인구의 약 3.5%를 차지하는 숫자로서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다. 출신국가별로 보면 중국계가 가장 많고 , 그 다음이 필리핀계, 인도계, 베트남계이고 한국은 동양계 중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숫자를 가지고 있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 미국에는 약 2백만 명의 한국인들이 살고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 2백만 한국교포는 미국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일까?  타 인종에 비해서 어떤 자리 매김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인의 미국이민은 성공적이었다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후일 역사가 하겠지만, 나 개인적인 생각은 다소 긍정적이기도 하고 다소 부정적이기도 하다. 2백만 교포가 모두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서 어느 정도 살게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교포사회의 이만한 성공이 대부분 교포들 상호간의 "동네장사"와, 흑인가 빈민촌에서 목숨걸고 한 "어수룩한 장사"의 결과라는 것을 주목해야 되고, 주류사회에서 아직도 한국인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런 현상이 어느 민족에게나 있는 이민초기의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그냥 넘어 갈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이제 눈을 들어 멀리보고 미국 주류사회에 어떻게 발을 부칠 것이냐를 생각해야 한다.
   동양인으로서 한국인이 미국사회에 뿌리를 내리려면 극복해야 할 장애가 한 둘이 아니다. 첫째로 영어에 자유로워야 한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면서 미국 주류사회에 뛰어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민역사가 꽤 오래된 한국인 사회에서 영어 때문에 아직도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사업을 해도 한국인 울타리를 벗어나서 미국 주류사회와 사업을 해야 시장이 넓어 성공의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영어 때문에 이 한국인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기업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거의 한인 코뮤니티의  모든 비지네스가  한국인을 주고객으로 하는 비지네스이거나, 영어가 거의 필요 없는 단순 소매업, 단순 서비스업인 실정이다. 이래 가지고서는 동족간의 경쟁만을 부채질 할 뿐, 뻗어나갈 시장이 없어 사업전망이 없게 된다.
  둘째로 미국의 관습이나 생활방식을 익혀야 한다. 로마에 가서는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미국에서는 미국식 관습과 사고, 예의와 행동양식에 익숙해야 한다. 미국에 30여 년을 살았어도, 아직 세끼 모두 한식으로 식사를 해야 되고, 영어로 전화를 받지도 못하는 한국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보면, 한국인은 타민족에 비해 미국생활에 적응하는 속도가 상당히 느린 편인 것 같다. 한국인으로써의 철저한 뿌리의식은 가지되, 미국을 배우고 미국을 안 후에 미국사회에 뛰어들어야 한인사회는 성장할 수 있다.
  셋째로 미국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 협조하여야 한다. 실제로 한인사회는 아직도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사는 경향이 있다. 몇 몇 개인이나 단체들이 앞서가며 미국사회에 참여하고 있지만, 한인 전체로 보아서는 그 활동이 미미한 실정이다. 이래서는 미국 주류사회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도 않고, 미국 주류사회로부터 협조나 도움을 받기도 어려워진다. 개인으로서도 마찬가지이다. 선거나 투표에 꼭 참여하고 미국사회 일에 자발적으로 동참함으로서 미국도 배우고 자기 자신을 키워갈 수 있어야 한다.


   1900년대 초반에 미국에 들어온 한국노동자들은, 거의 농노와 같은 조건 속에서 일을 하였고, 미국의 이등국민 같은 대우를 받으며 살아야 했다. 이보다 먼저 미국에 온, 중국계는 피습을 당하기도 했고, 일본계 이민은 2차 대전 중 5년간의 수용소 생활을 해야 했다. 또 산림의 벌채장에서 일을 많이 했었던 초기의 인도계 이민도 숙소가 기습을 받고  백인폭동으로 큰 상처를 받은 일이 있었다. 이런 차별대우와 악조건 속에서도 동양계 이민들은 동양적인 가치관과 가부장적인 결속력을 바탕으로 꿋꿋하게 자리를 잡아왔던 것이다. 특히 이민역사가 타민족에 비해 짧고, 수적으로도 적은 한국계는 지금은 제법 튼튼한 기반을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한국인 특유의 끈기와 노력,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교육열, 하루 열 두세 시간의 긴 노동도 참아내는 참을성, 어떤 조건 아래에서도 살아남는 생명력 등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 개인으로서 흘린 땀과 눈물은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 자,
  웃음으로 거두게 되느니....
  웃음으로 거두게 되느니....."

JimmiXS :: IMIVnxuWGf  [201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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