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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b.k. jeon
Subject   수필: 아카시아 꽃잎의 추억

    아카시아 꽃잎의 추억

   해마다 5월이 되면, 어릴 적 가시가 많아 손을 찔리면서도 따먹던, 달콤한 꿀 냄새가 나던 아카시아 꽃이 생각난다. 내가 살던 옥천의 미산에는 해마다 이때쯤이면 아카시아 꽃이 산야가 하얏토록 만발하였었다. 우리 꼬마들은 하학길에 습관처럼 아카시아 숲 속으로 뛰어들어가 아카시아 꽃잎 잔치를 한판 벌리고서야 집으로 돌아가곤 했었다
  조심조심 가시를 피해 아카시아 나무에 기어올라가면 꽃향기가 나무 전체를 그윽이 감싸고 있었다. 흡사 작은 포도송이처럼 생긴, 하얀 아카시아 꽃송이를 손안에 살며시 쥐고 훑어 내리면  손안에 가득 아카시아 꽃잎이 들어오고, 우린 초식동물인양 달콤한 꽃잎으로 포식을 했다. 으레, 나무 밑에는 나무에 기어오르지 못하는 또래 여자 애들이 위에서 꽃송이를 던져주기를 하얀 목을 치켜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꽃송이를 따서 밑으로 던져주다가도, 제일 예쁜 꽃송이는 꽃잎이 떨어지지 않도록 정성 드려 따 가지고 조심스레, 다른 아이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한쪽으로 던져 내려야했었다. 왜냐하면 거기 내가 딴 꽃을 기다리는 내 마음의 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와 같은 학년이었다. 용궁 전씨만 모여 사는 독가촌(獨家村)에 유일한 타성 집 딸이었던 종순이는 동그랗고 커다란 눈, 뽀얀 살결에 공부도 잘하고 마음씨가 아주 고운 아이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애의 집은 우리 전씨 문중의 산을 돌봐주고 산소들을 관리해주며 문중 땅을 부쳐먹고 사는, 이를테면 하인 같은, 산지기 집안이었다. 그 애의 아버지가 문중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괜히 그녀 생각을 하며 가슴아파했다. 나는 이런 집안간의 내력에 상관없이 용감하게 종순이를 마음속으로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햇볕이 보드라운 날 오후, 학교에서 함께 무엇을 하다가 늦어져 나와 그녀는 단둘이서 집에 돌아가게 되었다. 동구 밖 야산에는 그날 따라 눈송이같이 하얀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 나 꽃 따 줘!" 그녀의 이 말 한마디에 나는 날랜 원숭이처럼 나무에 올라가 꽃을 따서 밑에 있는 그녀에게 조심조심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꽃 먹지마! 나하고 함께 먹어!" 나는 신이 나서 꽃을 집어던지며 소리를 쳤다. 종순이 치마폭 가득히 꽃이 담긴 것을 확인한 후, 나는 어서 그녀와 함께 꽃을 먹을 욕심으로, 평소와는 달리 한길 높이에서 밑으로 과감하게 뛰어 내렸다. "악!" 나는 바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카시아 가시가 내 운동화 바닥을 뚫고 들어와 발바닥에 박혀 버렸기 때문이었다.
   가까운 밭둑에 털썩 주저앉아 신과 양말을 벗어보니 제법 피가 흐르고 있었다. 종순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어떡해! 어떡해!", 자기 손수건으로 피를 닦아낸 후 조심스럽게 내 발바닥에 박힌 아카시아 가시를 뽑아내는 것이었다. 나는 금새 아픔도 잊어버리고, 그녀의 하얀 손과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더 얼굴을 찡그리며 아픈 시늉을 하고 있었다. 피가 멎어 다시 일어서서 쩔뚝이며 집으로 가는 길에 그녀는, 언제 챙겨뒀던지, 눈부시게 하얀 아카시아 꽃 두 송이를 내미는 것이었다. "하나는 니꺼! 하나는 내꺼! 빨리 먹어, 그러면 안 아플 거야!" 그녀의 어깨에 기대어 걷든 아카시아 꽃향기 어린 동구 밖에서, 나는 그만, 난생 처음 여자에게 내 속마음을 고백해버리고 말았다. "나, 니가 좋다!!". "나두...!"
   5월이 되면 내 마음은 한번쯤 그 시절로 돌아간다. 그 풋풋했던 어린 시절의 아카시아 향기와 그녀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삶에 찌들지 않은 그때, 때묻지 않은 그 순수함이 너무도 그립기 때문이다. 옛 고향 동구 밖, 아카시아 숲 속의 그 평화와 정적이 지금은 너무도 아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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