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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b.k. jeon
Subject   My stories in America: (18) 숙주나물에 울고 웃고

   숙주나물에 울고 웃고....

  가게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또 월남 피난민들이 몰려오면서 신선한 채소를 사들이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아직 한국인이 하는 채소농장이나, 채소전문도매업체가 없을 때여서, 철 따라 채소를 고루 갖추어 놓기는 스프링필드 같은 시골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쉬운 대로, 비싸기는 했지만 미국 야채도매상을 통해 가끔 야채를 구입할 수는 있었지만, 중국인이나 월남인들이 즐기는 숙주나물은 필요할 때 구할 수가 없었다. 멀리 시카고로부터  숙주나물을 구입하면, 더울 때는 운송도중에 썩어 버리거나, 추운 날엔 얼어버려서 도저히 안정적인 공급이 불가능했다. 나는 이런 점을  감안해서 내 손으로 직접 숙주나물을 키워보기로 결심을 하게 된다.
  어릴 적에 농촌에서 자란 관계로, 할머니와 어머니께서 제사나 잔치를 위해서 숙주나물을 기르는 것은 보았어도, 내 손으로 키워 본 일이 없었으니 무조건 시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아파트에 살 때는, 목욕탕이 숙주나물 재배 실험실이 되었다. 조그만 플라스틱 통에 구멍을 뚫고 감자 마대를 깔은 후 물에 불린 녹두씨앗을 고루 편 다음, 이것을 욕조에 걸쳐놓고 하루에 다서 여섯 번 물을 퍼부어 주는 식으로 길러 보았는데, 샤워 할 때마다 숙주 통을 옮기고 다시 끌고가고 하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래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숙주나물이 꼭 필요한 아이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숙주는 번번이 썩기나 했지 제대로 커주지를 않았다.
  수십 번을 시험 재배하면서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발아율이 높은 갓 수확한 씨앗을 사용해야 되는 것조차 모르고 무조건 물만 주면 되는 줄 알았으니, 무식이 바로 고생길이었던 셈이다. 미조리 농대의 자문을 받아가면서 기술을 연마(?) 하여 어느 정도 자신을 가질 무렵에 우리는 첫 집을 장만하여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를 하자마자 나는, 두 대의 차가 들어갈 수 있는 차고를 숙주공장으로 만들어버렸다. 필요한 배수시설을 하고, 물을 끌어들이고, 냉난방 시설을 해서, 여름이고 겨울이고 숙주재배를 할 수 있도록 해 놓고, 숙주를 기르기 시작했다. 우리 자체의 포장지도 만들고, 차도 아예 냉장시설이 갖추어진 1톤짜리 트럭을 새로 사서 본격적인 숙주 사업에 뛰어들게 되었다. 가게를 하면서 애를 기르면서, 또 밤중에 일어나 한번씩 꼭 숙주에 물을 주면서, 이 일을 한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무리이었으나, 나는 미 중서부의 미국 슈퍼마켓에 숙주와 미국인들이 샐러드에 넣어 즐겨먹는 알팔파(Alfalfa Sprout)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기 때문에 무리인 줄 알면서도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
  반년쯤 후엔 숙주와 다른 스프라우트도 꽤 팔리고 있었다. 일주일이면 수천 파운드씩 생산을 해서 정기적으로 체인 슈퍼마켓에 공급을 하게 되었다. 규모가 차츰 커지자 시 위생국이 숙주나물의 생산과 포장, 보관 같은 것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숙주나물 재배를 채소생산이 아닌 식품생산으로 분류를 하고, 내 사업에 간섭하고 나서는 것이었다. 시 당국은 먼저 숙주나물을 계속 생산하기 위하여서는 먼저 주거지역이 아닌 상업지역으로 옮겨야 하고, 시 위생당국의 위생검열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시 위생국에 10 여 차례나 찾아가서 숙주가 야채인 점을 강조하고  집에서도 기를 수 있는 것이 아니냐며 집에서 기르되 위생검열은 받겠다는 식으로 절충안을 내놓았다. 시 당국으로서는 숙주가 야채라는 나의 주장에 할 말이 없었다. 단 판매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생산과 포장 과정에서의 위생상태를 문제 삼는 길밖에 없었다. 결국 나의 주장이 관철되고 위생검열을 정기적으로 받으면서 우리는 차고를 개조해서 만든 숙주공장을 계속 사용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대량의 숙주를 길러 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발아율이 낮은 녹두를 사용하면 한꺼번에 전량이 크다가 썩어버리고, 제때 숙주를 공급할 수 없는 일이 허다하였다. 그렇다고 비료를 쓴다거나, 숙주가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화공약품을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당시 미국에서도 채소를 기르며 인체에 해로운 제초제나 살충제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나 역시 어떤 약품을 쓰면 숙주가 썩지 않고 잘 큰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약품이 얼마나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그것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우리의 숙주공장 상호 Jeon,s Natural Foods Co.(전 자연식품회사) 가 말해 주듯이, 완전 무공해 숙주와 무공해 곡물과 무공해 식품을 생산해서 소비자들에게 공급하자는 것이 내 뜻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인체에 해로운 농약이나 비료를 사용할 수가 있겠는가? 나는 고집스럽게 이 무공해 자연식품의 원칙을 고수해 나갔다. 그러자니, 자연식품이나 무공해 식품에 대한 지식이나 노하우(Know-How)가 특별하게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힘들고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끈질기게 가게와 숙주나물에 매달렸다. 숙주를 반타작하는 일이 많으니 자연 버릴 각오를 하고 필요한 양보다 많이 기르고, 남는 것은 판촉용과 샘플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숙주재배에 어느 정도 성공하여 우리 식품점의 수요에 자급할 정도가 되었을 때, 나는 샘플 숙주와 알팔파를 가지고 미국 슈퍼마켓과 도매회사, 과일야채도매상을 찾아다니며 판촉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 숙주나물과 알팔파를 본 바이어들은 신기해하면서도, 그것이 사람이 먹는 것이 아니라 소가 먹는 것이 아니냐는 둥, 사람이 그것을 먹으면 소처럼 되지 않느냐는 둥 농담으로 나를 대하다가 차츰 샘플이 팔리기 시작하자 소량이지만 주문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좋은 물건을 대주려 노력을 하고, 항상 정직하게 신실하게 이들 바이어를 대해 나갔다. 이들 바이어들은 세월이 지나며 하나 둘 나의 친구가 되어 갔다.
  차츰 우리의 자연식품사업은 자리를 잡아갔다. 2년쯤 지나니까, 우리의 상표를 붙인 제품이 미조리주와 북부 알칸사주, 캔사스주와 오클라호마 주의 일부에까지 팔려 나가는 것이었다. 위에서 말한 지역만 해도 남한보다 훨씬 넓은 지역이었다. 이 광활한 지역을 우리가 직접 커버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몇 개의 큰 슈퍼마켓체인과 도매회사에 우리 물건을 공급하고 그들로 하여금 다른 채소와 함께 배달을 하도록 하였다. 자연히 수요가 증가하고 사업도 번창해 갈 수밖에 없었다.
  이제 우리는 더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나는 조금 시외로 나가 공장을 짖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완전 자동 시스템을 갖춘 숙주공장을 짓겠다는 꿈을 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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